무분류/글2012. 1. 29. 23:22
쌍코(?)라는 여성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쓴 거라고 함.
쌍코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글 정말 잘 쓰셨다.



지금 빡치고 심란한 햏들을 위해

쌍코체가 아닌 일반체로 쓰겠소.
참 지루할 수 있소.
난 그 놈들 표현대로 ㅈ나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여자라서
아주 장황하고 서정적으로 드센 글을 써줄 예정이니까.
 

 

나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첫날 친구와 5시간동안 손수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종로로 나섰다.
첫 도로점거 야간시위, 전경과 최초의 육탄전이 벌어진 그 새벽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전경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방패로 우리를 밀가루 반죽처럼 밀어붙일때,
너무 쉽게 벗겨져 흙탕물에 나뒹구는 내 플랫슈즈를 보며 나는 진짜 악 소리나게 무서웠다.
텅 빈 도로를 포위한 검은 방패의 물결, 지축을 뒤흔드는 규칙적인 함성과 군화소리.
나는 살며 길에 침 한번 뱉은 적 없고 면허가 없어 교통경찰 한번 대면 못해본 어린 여대생.
한마디로 쫄았다.
나는 시위대가 도로위에서 틀어준 민중가요란 것도 그날 처음 들어본 그런 애였다.
 
방패와 함께 푸른 새벽이 몰려오고 빠르게 날이 밝았을때
도로위의 시위대는 포위된채 한 구석에 초라하게 밀려나 있었다.
절반은 도로밖 인도로 피해 있었고
절반은 도로 위에서 알 수 없는 억울함,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후자는 태반이 여자였다.
출근길 이 사태를 보고 멈춰선 시민들이 늘어났다.
그 중 하이힐을 신고 원피스를 입은 한 <언니>가
괴성과 함께 명품백을 휘두르며 전경들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들아!!
새로운 사태의 국면이었다.
뒤를 이어 몇몇 넥타이 부대가 합류했다.
남자들이 손깍지를 끼고 방패 앞에 서서 여자들을 방패로부터 막았다.
사태는 더더욱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여자들의 곡소리가 높았다.
그동안 커다란 렌즈를 장착한 대포카메라를 멘 아저씨들은
인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성별로 지분싸움을 하자는게 아니다.
 

저 새벽이 아니라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단체와 운동권을 제외한 일반 시민을 기준으로
시위의 구심점이자 주축이자 도화선 역할을 한 건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이었다.
이 유명한 촛불소녀 이미지 또한
촛불삼국이란 일종의 연합체를 만들어 활동한
다음 여자 커뮤니티들의 합작품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남자들도 많았다. DVD 프라임, MLB 파크, 그 유명한 촛불예비군.
하지만 이들의 비율은 많지 않았고 내건 슬로건 역시 상당부분
촛불시위를 위해 뛰어나온 여고생, 여대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을 지키자는
요지의 즉, 여자들도 나서는데 남자가 가오가 있지 쪽팔리게. 이제 우리가 한다. 이것이었다.
폄하가 아니니 피곤하게 곡해하지 말아라.
수많은 남자들이 인터넷에서 논객 노릇 하고 있을때-트위터도 없던 시절에 자위하느라 고생했다-
시위대 과반수 이상의 "감정적인" 여자들이 조직적으로 시위현장에 뛰어들었다는 거다.
 
 
언론은 놀라 자빠질듯 떠들었다.
촛불 여고생, 대담한 발언!
먹거리 앞에 강해진 모성, 젊은 엄마들의 유모차 시위!
정치냉담의 오명을 벗고 거리로 나선 젊은 여성들!
 
비록 시위는 냉소주의자들을 염세주의자로 진화시킨채로 종식되었지만
이 시위가 가지는 의의는 대단히 컸다.
우선 여성들을 결집시키고 정치를 생활화했다.
쭉빵같은 10대 여초 커뮤에서 2-30대 여성들의 삼국 커뮤와 주부들의 마이클럽까지,
한국에서 미주까지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동가처럼 시작된 힘찬 목소리는
4대강 바자회, 신문광고, 광복절 한복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래시몹으로
속삭이듯 노래하듯 꾸준히 이어졌다.
나보고 자뻑페미래도 상관 없는게 자화자찬할만큼 대단한 일이다.
여자들 보고 정치에 무지하다 비웃으면서도
한국 젊은 세대의 남자들 역시 생활정치의 명맥은 끊긴지 오래였으니까.
남자랑 정치토론하자고 감히 아득바득 기어오르지 않는,
백치스러운 명랑함을 여자의 한심하지만 사랑스러운 미덕으로 치고 적당히 귀여워하며
그녀들보다 신문을 더 많이 읽는다는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정치를 했다.
보고 듣고 논평한게 아니라 진짜 정치, 했다.
많이 토론하고 행동하고 모금했다.
지치지 않고 경각심을 가지며 독려도 했다.
 
그런데 반FTA시위가 거세지고 나꼼수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2008년을 새침하게도 지워버린 언론들은 또 다시 호들갑을 떨며 강조하더라.
이 시위는 기존 시위와 달리 정치에 냉담하던 여자들이 '처음으로' 거리로 나왔다고,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진짜 빡쳤다.
우리가 4년간 해온건 저들에게 시위도 정치도 아니었던거다.
우리는 단지 <미혼으로서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시위의 꽃
(발췌:진보남성들의 성폭력, 글쓴이 선)
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해온 모든게 애교로 보였나?
위대하고 숭고하고 거창한 정치적대업은 모두 언제나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남자님들 영역이고,
여자들이 발버둥치며 주도해온것들은 새로운 취미이자 조금 색다른 소꿉놀이고 
언제까지나 그저 신기한 현상이기만한가?
니들은 우리가 나꼼수 모금함에 저금통을 넣었던 어린아이처럼 그런 맘으로 <기특하냐>?
 
   

2008년 광우병 시위 초창기 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일은 내가 몸 담고 있는 커뮤니티들에서 잊거나 잊고싶어하는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겐 다시 꺼내기 꺼려지는 불편한 치부지만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삼국으로 더 알려진 다음 3대 여성 커뮤니티들은 연합시위를 계획했다.
수백명의 여자들로 이루어진 긴 대열이 가두행진할 계획이었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함께 참여한 MLB파크와 촛불예비군등 남자 커뮤니티들이 엄호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 중 두 커뮤니티는 딱히 정한 드레스코드가 없이 마스크, 운동화, 모자로 중무장했지만
한 커뮤니티는 일부러 여성성을 최대한 강조한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풀메이크업, 하이힐을 장착했었다.
<우리같은 천상 여자들도 이 꼬라지를 볼 수 없어 뛰어든다>는 의미의
가장 여성스럽고 그래서 가장 우아하게 과격한, 엿먹어라 메시지였다.
남자들도 환호하고 여자들도 열광했다.
킬힐을 신고 보무당당하게 대열을 지휘하는 그녀들에게
멋진 언니 연호가 울려퍼졌다.
초기 순수했던 의도는 씁쓸한 결말을 맡게된다.
일명 지휘부 파벌이란게 생기게 되고, 몇명의 여성들은
무채색의 시위대 사이에 원피스 차림으로 쏟아지는 예비군들의 관심을 받으며
조금 다른 의미로 시위를 즐기게 되었다.
여러 행동으로 조금씩 구설수에 올랐지만
누구도 '열심히 시위하는 진보여성'인 그들에게 대놓고 뭐라 말하지 못하던 어느날
일명 프리허그 사건이 일어났다.
시위라기보다 예비군들과의 단체미팅 분위기를 띄다가 그것이 과열된 어느날 밤
흥취한 그들에게 똑같이 흥취한 그분이 던진 말씀.
"너무 수고하셔서 제가 해드릴건 없고, 줄 서시면 한분씩 안아드릴게요."
남자들은 환호하며 줄을 섰고 원피스 차림의 여성은 차례대로 포옹을 서비스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던 남자들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던진 "저건 뭐, 출장 도우미냐?"
한마디는 이 사태에 대한 목격담, 남자들의 뒷말, 그건 좀 아닌것 같다는 중년 시위대분들의 염려에 뒤이어
그 원피스 파벌부대가 속한 커뮤니티를 비롯
모든 여자들의 수치심에 불을 붙였다.
그 외에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있어 결국 그 여자분은 시위대에서 물러났지만
쟁점에 불을 붙인 계기는 '안아드릴게요' 사건이었다.
여자들이 그토록 분노한건 그녀들이 시위에서 남성에 대한 상납의 형태로 여성성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꼼수 듣고 도취되서 거리로 쏟아져나온거 아니다.
그 부분 우리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4년간 해온,
니들식 정서에 의하면 '아가씨들이 진보영웅남성수령분들께 상납해바친 뒷바라질' 억울해서라도
 확실히 하자.
다시 말하지만 시위 열심히 했다.
모금하고 뼈빠지게 광고도 냈다.
다들 통장에 몇백원밖에 없는 통장도 털어서 적어서 죄송해요 메세지 적어 보냈다.
정치후원금 보태고 우리가 개념정치인이라 부르는 그 분들 개별강연 주최 위해 발로 뛰었다.
바자회에 물건 내놓고 팔고 사고 그 돈으로 정치하자며 봉은사 앞마당, 땡볕과 폭우 속에서 싸웠다. 
한겨례와 경향에, 파업중이던 MBC에 힘내라고 간식 폭탄 퍼부었다.
시위현장에서 물대포 맞아가며 우비 나르고 핫팩 쥐어주고 김밥 먹였다.
그 짓 4년간 했다.
우리도 대단해요 칭찬해요 뿌잉 하는거 아니니까 그건 좋은 일이지만, 이라고 시작되는 사설 달거면
닥치거나 차라리 난 그 김밥 먹은 적 없다고 깐죽거리는게 낫겠다.
요점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너희들이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정치담론하는 것에 낚여
앞뒤 없이 뛰어들어 이 판 아이돌화시킨 빠순이가 아니고,
그게 우리에겐 정치였다. 4년 내내.
주진우에 환장하고 김총수 섹시하다 빠순질한게 아니라
이해찬을 쿨붱으로, 문재인을 워너비시아버님으로, 한명숙을 우리횐님으로,
그게 우리 방식의 여성적인 정치다.
가슴에 립스틱으로 메세지 쓰고 그라비아 아이돌 각도로 사진 찍는게 아니라
시위대를 위한 먹을거리, 입을거리 준비하고
댓글북 만들고 떡이라도 조공하고 초청강연 듣고
드레스코드를 맞춘 플래시몹을 하고
광고시안을 만들어 투표하고 
시위를 생활로, 퍼레이드처럼 즐기는게
여'성'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우리 시위방식이었지
속옷 입고 젖가슴 위에 립스틱으로 애교스러운 글을 써서
'여성, 새로운 표현의 자유'소리 듣고 싶은 생각 따위 전혀 없다.
진보의 꽃이 되어 재잘거리며 신선한 활력소가 되어주는 여동생 역할은
공짜 나레이터 모델같은 저 짓보다 더더욱 싫다.
 
 
그런데 어째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된것 같다.
경기는 듬직한 남자님들께 맡기고,
폴짝폴짝 현란한 수술을 흔들며 우리 진보 파이팅 외치는게
그래서 젊은 여자도 진보라고,
젊은 여자들도 진보논객 좋아한다고,
젊은 여자들도 정치개념남에 뻑간다고
그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 대본이었나보다.
치어리더의 선을 벗어나 이의를 제기하니
삽시간에 '우리'진보를 빠르게도 여자와 남자로 갈라
탁상공론하던 남자들은 사려깊고 수용의 폭이 넓은 논객이 되고
여자들은 까칠하고 피곤한데 벗지도 않으면서 드센 애가 된다.
남자들은 손쉽게 이것을 가슴 큰 여자vs벗지 못한 여자들의 열폭으로 격하해
머리채 쥐어뜯는 싸움 보듯 즐기며 관망한다.
심지어 남성의 주목과 관심을 사이에 둔 처첩싸움 다루듯 한다.
어쩜 그렇게 심플하고 쉬울 수 있는지
과연 트위터 말꼬투리 하나엔 죽자고 달려들어 지기싫어 짖어대도
사사로운 여자들 개싸움에는 감히 끼어들지 않는 관용적인 진보남성의 배포와 여유답다.
표현의 자유 좋아하네.
루저 사태때 그놈의 방만한 표현 덕분에 상처 입었다고 들고 일어나 이를 갈던 남성들은 어디로 갔나.
이슈화 앞에 여성성은 '가슴칠판'의 쇼맨쉽 도구로 전락돼도 괜찮냐?
 
  
한마디만 보태자면 슬럿워크랑 모피반대시위를 예로 든 인간아.
모든 표현의 자유에는 명제가 있다.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에도 근거가 있단 소리다.
슬럿 워크는 일명 잡년시위로 애초에
'성폭행은 매춘부처럼 입은 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경찰의 개소리에 캐나다와 북미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진,
'우린 야하게 옷을 입을 권리가 있고 그것이 니가 날 만질 권리를 허락하는건 아니에요'
라는 슬로건을 건 시위다. 그렇기때문에 매춘부처럼 입은거다.
반모피 누드시위는 모피를 입느니 벗으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작된 과격시위다.
둘 다 야하거나 누드여야할 필요와 이유가 있었다.
정봉주 석방을 위해 제공된 여자 가슴은 도대체 어떤 연계성이 있는가,
이 가슴사건에 '이슈가 된 쇼맨쉽' 이상의 정당성이 있는가?
한 남성이 티팬티를 입고 양쪽 엉덩이에 동성애자에게 인권을 주세요라는 글자를 립스틱으로 쓴채
야동각도로 엉덩이 클로즈업한 사진을 올렸다면
그것은 처참한 성적소수자인권을 대변하는 인권운동가의 재치있는 퍼포먼스가 되었을까?
 
이 사건의 주체가 젊고 풍만한 여성이고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가 50대 남성정치인의 석방이며
그것을 위해 이용한것이 여성 특유의 신체부위였기에
엮인 사람들의 인성이나 지위 업적을 떠나 구도 자체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불쾌한 무언가를 연상하게 된다.
그에 대한 남자들의, 그 말도 웃긴 '진보적인 남성들의'
느물거리는 시선은 그냥 한마디로 똥벼락이다.
 
 
총수는 녹음실에 앉아,
킬킬대며 또다시 정치적 담론을 나눌때 뭐라 하려나.
한마디라도 하려나.
유난이야 씨바라 하려나.
고재열은 이 일에 눈을 빛내며 냉소하려나.
여'성'간의 젖은 티셔츠 싸움 보듯 관람하며 한국 여자의 피곤한 강박적 열폭에 대해 트윗을 쓰려나.
주진우 기자는 진심으로 당혹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여자들이 '삐졌는지' 몰라서.
진보논객들은 어이없고 짜증나고 기집애들이 재수없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스압으로 징징대는거냐고 어른의 한마디를 날릴지도 모르지.  
이번 사태로 제일 짜증났던건 가슴사진도 표현의 자유드립도 아니고
처음부터 대등한 수평선에 놓아준적도 없던, 여전히 정치적 부외자인 20대 여자애들을 향한
재롱 가득한 퍼포먼스 보듯 하대 섞인 우쭈쭈란것도 모를것이다.
 
 
여자들이 이 사태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정리하자면,
고재열로 비유 또는 대변되는 캡쳐의 트위터리안들에겐 환멸이고
주진우기자에겐 경멸이다.
왜인지는 죽어도 모를것이다.
정확히는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제대로 읽을 자가 없다는게 맞는 말이다.
Posted by Ro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