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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2 크누트 안녕
  2. 2008.12.10 베를리너 필하모니
  3. 2008.11.26 Berlin 5
무분류/일기2011. 3. 22. 01:42
베를린에 두 번.
갈 기회가 있었다

그 두번 모두, 크누트는 보지 못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선 그 길이 이렇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그 날 나를 동물원에 가지 못하게 한 그 사람을 원망해도 소용 없겠지
어차피 그것마저도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난 크누트 대신에 크누트가 1면에 실린 신문을 기념으로 가지고 왔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골칫덩이인 크누트를 어쩌면 좋을까 하는 문제로 고민중이던 동물원
그리고 그런 크누트를 동물원에 계속 살게 해준 베를린 시민들 이야기가 담긴 신문이었다

난 크누트를 실제로 만난 적도 없지만
그래도 크누트의 죽음이 안타깝다

이제 평안하기를, 크누트야
만나러 가지 못해 아쉽구나
Posted by Roah+
정보2008. 12. 10. 07:22
1963년 10월 15일 저녁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베를린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연주를 들었다. 이날 오전 독일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개관 테이프를 끊은 베를린 필하모니 오프닝 콘서트였다. 첫곡으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스승인 독일 작곡가 보리스 블라허(1903∼1975)의 축전 서곡을 연주했다. 빌리 브란트 총리 옆자리엔 이 콘서트홀을 설계한 베를린 공대 교수 한스 샤룬(1893∼1972)부부가 앉았다. 샤룬은 파울 힌데미트 협회 창립 회원을 지냈다. 독일 작곡가 힌데미트에 남다른 관심을 보일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슈투트가르트 리더할레(1위), 카셀 극장(1위), 만하임 국립극장(3위) 등의 설계 공모에 입선했지만 당선작으로 뽑히진 않았다. 베를린 필하모니는 이들 극장 설계에서 쌓아온 경험의 소산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외부 전경



1882 년 창단된 베를린 필하모닉은 롤러스케이트장을 개조한 옛 필하모니 건물(1614석)이 1944년 1월 30일 새벽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뒤 베를린 슈타츠오퍼로 무대를 옮겼다. 오페라 극장마저 폭격으로 문을 닫자 교회당ㆍ영화관(티타니아 팔라스트)ㆍ학교 강당(베를린 음대 부속 음악홀)을 전전했다. 1949년 베를린 시민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베를린 필하모닉의 친구들’을 결성해 필하모니 신축을 위한 모금에 나섰다. ‘필하모니 복권’에 이어 액면 가격에 5페니의 기금을 보탠 10페니, 30페니짜리 우표를 발행했다.

12명의 초청 건축가 중 10명이 설계 공모에 참가했다. 13명의 심사위원들은 16시간에 걸친 토의 끝에 다수결로 1등을 뽑았다. 가렸던 이름표를 들춰보니 베를린 공대 한스 샤룬의 설계안이었다.

무 대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객석을 16개의 블록으로 샤룬의 설계안은 ‘구두 상자’모양의 장방형(長方形) 콘서트홀에 익숙해 있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설계안이 당선된 직후 건축 전문가들은 물론 음악가, 평론가, 정치가 등의 반대 여론에 부닥친 것도 이 때문이다. 샤룬에게 가장 든든한 지지자는 카라얀이었다. 그는 심사 기간 내내 샤룬의 설계안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카라얀은 샤룬의 설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베를린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시의회의 다수당이 사민당으로 바뀌면서 콘서트홀 부지 선정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처음엔 요아힘스탈러 고교 뒤의 공터였는데 콘서트홀 앞쪽에 학교 건물이 버티고 있는데다 위치도 서베를린만 고려에 넣은 것이었다. 그때는 아직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이었다. 시의회는 필하모니의 입지가 베를린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설계자인 샤룬에게 새 부지 선정을 위임했다. 마침 1958년 베를린 도시 계획 공모에서 2위에 입상한 샤룬은 국립도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악기박물관을 아우르는 ‘문화 포럼’의 부지로 염두에 두었던 캠퍼 광장으로 필하모니 부지를 정했다.

티어가르텐 끝자락에 자리잡은 베를린 필하모니는 개관 당시에는 베를린 장벽 바로 옆 서베를린의 끝자락이었으나 통일 후에는 베를린의 중심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베를린 장벽 가까이 지은 것은 이곳이 언젠가는 통일 베를린의 중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필하모니 공사가 한창일 때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다.



베를린 필하모니 실내악홀

음악을 ‘중심’에

2440 석으로 결코 적지 않은 객석을 보유하고 있지만 무대와 객석의 최대 거리는 30m에 불과하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텐트형 지붕과 외관은 실용적 모더니즘의 산물이다. 건물 외벽은 1981년 황금색 패널을 덧대기 전까지는 예산 문제 때문에 우중충한 흰색과 황갈색 페인트칠로 마감했었다. 산화 처리한 알루미늄 패널은 지붕 꼭대기에 있는 불사조 조각상과 더불어 한스 울만(1900∼75)의 작품이다.

공연장 설계는 안(무대와 객석)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각ㆍ청각ㆍ공간 등 모든 면에서 음악(무대)을 중심에 배치한, ‘유기적 건축물’의 모델이다. 인간과 음악과 공간의 완벽한 조화다. 건물의 외관은 대형 선박의 선수(船首)같은 형상이다. 샤룬은 어렸을 때부터 모형 배를 만들고 수집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설계의 모든 초점은 음악에 있다. 생산자(지휘자 연주자)와 소비자(청중)의 구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객석의 위치에 따라 듣는 음향의 편차도 그리 심하지 않다. 가장 싼 좌석에서도 R석 못지 않는 풍부하고 명확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건축가 한스 샤룬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반영한 객석 배치다. 샤룬 건축물의 특징은 부분에 대한 강조다. 그에게 부분이란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사회에 기여하는 개인이다. 그의 건축 이념은 자유로운 개인이 일하고 거주하는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1975년에는 오케스트라 무대를 여러 개의 블록으로 나눠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도 갖췄다. 처음엔 TV 촬영을 위한 것이었으나 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면에서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대 천장에는 136개의 피라미드형 저주파수 공명기를 설치해 풍부한 저음을 내도록 했다.

음향을 맡은 크레머는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신축 당시 설계안을 설명하는 발표장에서 ‘그것 짓지 마세요’(Don‘t build it)이라고 소리질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옥에서 온 사자의 목소리 같았다느니 고집불통 학자의 혹평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로열 페스티벌 홀은 지금 음향 때문에 개보수 공사 중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무대 모습

애칭은 ’카라얀 서커스‘

텐 트형 지붕 때문에’카라얀 서커스‘란 애칭으로 불렸던 필하모니는 고대의 원형 무대를 재현한 것 같은 객석 배치로 온통 축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주자와 청중, 청중과 청중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체험한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특징은 여러 개의 블럭으로 분할된 객석이다. 각 블럭의 맨 1열에 앉은 관객은 아무런 장애물이나 방해 없이 직접음을 들을 수 있다. 미국의 음향학자 레오 베라넥은 무대 앞쪽에서는 소리가 아름답고 명료하며 균형감있고 감싸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V자형 콘크리트 기둥이 객석을 떠받치면서 발코니를 이루고 있는 로비도 이채롭다. 처음 방문한 관객이라도 알파벳 글씨만 따라 계단을 오르면 금방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로비에는 알렉산더 카마로(Alexander Camaro. 1901∼92)가 디자인한 원형 스테인드 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실내악 홀은 한스 샤룬이 타계한 후 그의 건축사 사무소 동료인 에느가 비스니브스키가 샤룬의 스케치에 기초해 완성했다. 처음엔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필하모니 홀 개관 후에도 해체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해온 ’필하모니의 친구들‘이 100만 마르크를 모금했다. ’우리의 실내악 홀을 구하자‘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추진 운동을 전개했다. 지금도 활동 중인 ’필하모니의 친구들‘에는 연회비 50 유로만 내면 누구라도 가입할 수 있다.

비스니브스키 는 샤룬의 건축사 사무소에 1954년부터 합류했다. 그는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음악 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건축 과정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1987년 실내악 홀 개관 공연 직후 지휘자 카라얀은“오랫동안 이 홀에서 연주해온 것처럼 매우 편안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첫선을 보인 포도밭 스타일(vineyard style)의 객석 배치는 덴버 콘서트홀, 카디프 데이비스 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 토론토 로이 톰슨 홀, 도쿄 산토리홀, LA 디즈니홀, 로마 파르코 델라 무지카의 모델이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니 로비

◆공식 명칭: Berliner Philharmonie

◆홈페이지: www.berliner-philharmoniker.de

◆개관: 1963년 10월 15일 (실내악홀은 1987년 10월 28일)

◆건축가: 한스 샤룬(Hans Scharoun, 1893∼1972)

◆음향 컨설팅: Lothar Cremer(1905∼1990)

◆상주단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필 12 첼리스트, 베를린필 4중주단, 필하모닉 목관 5중주단, 베를린 살롱 오케스트라, 베를린필 재즈 그룹 등

◆객석 배치: 포도밭(아레나) 스타일

◆객석수: 필하모니 홀 2240석(합창석 120석 포함), 실내악 홀 1180석

◆부대시설: 악기 박물관(1984년 개관), 국립음악학연구소(1983년 개관)

◆주소: Herbert-von-Karajan-Strasse 1, Tiergarten, Berlin

◆ 초연: R 슈트라우스’알프스 교향곡‘(1915년), 쇤베르크’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힌데미트’교향곡 화가 마티스‘(1934년), 윤이상’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서곡‘(1973년)’오보와 하프를 위한 2중 협주곡--견우와 직녀‘(1977년)’교향곡 제1번‘(1984년)’교향곡 제3번‘(1985년)’교향곡 제5번‘(1987년)

◆매표소: +49 (30) 25488-132 평일 오후 3시-6시(토,일,공휴일 오전 11시-오후 2시). 1월 1일, 5월 1일, 12월 24일, 31일은 쉼

◆교통: S1, S2, S25 Potsdamer Platz, U2 Potsdamer Platz

◆가이드 투어: 매일 오후 1시(출연자 출입구에서 출발) 3 유로

-출처:중앙일보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출처] [세계명공연장순례]-베를린 필하모니|작성자 복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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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공연 보러 가야지. 꼭

Posted by Roah+
여행2008. 11. 26. 05:08

Park Sanssouci


Unter den Linden


Unter den Linden & Oper Haus


Fernsehturm & Bode Museum


Die Galerie in der Ost-seite. (East side gallery)


Berliner Mauer(trace)

클릭하면 원본크기. 16:9 와이드만 골라서.

베를린은 추웠다. 추운만큼 멋졌다. 분위기 있는 도시. 분단의 역사가 있는 도시.
관광용으로 남겨둔 벽이 기뻤다. 그만큼 슬펐다. 우리의 현재를 떠올리게 해서.


Posted by Ro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