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류/글2012. 1. 29. 23:22
쌍코(?)라는 여성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쓴 거라고 함.
쌍코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글 정말 잘 쓰셨다.



지금 빡치고 심란한 햏들을 위해

쌍코체가 아닌 일반체로 쓰겠소.
참 지루할 수 있소.
난 그 놈들 표현대로 ㅈ나 단편적이고 감정적인 여자라서
아주 장황하고 서정적으로 드센 글을 써줄 예정이니까.
 

 

나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첫날 친구와 5시간동안 손수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종로로 나섰다.
첫 도로점거 야간시위, 전경과 최초의 육탄전이 벌어진 그 새벽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전경들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방패로 우리를 밀가루 반죽처럼 밀어붙일때,
너무 쉽게 벗겨져 흙탕물에 나뒹구는 내 플랫슈즈를 보며 나는 진짜 악 소리나게 무서웠다.
텅 빈 도로를 포위한 검은 방패의 물결, 지축을 뒤흔드는 규칙적인 함성과 군화소리.
나는 살며 길에 침 한번 뱉은 적 없고 면허가 없어 교통경찰 한번 대면 못해본 어린 여대생.
한마디로 쫄았다.
나는 시위대가 도로위에서 틀어준 민중가요란 것도 그날 처음 들어본 그런 애였다.
 
방패와 함께 푸른 새벽이 몰려오고 빠르게 날이 밝았을때
도로위의 시위대는 포위된채 한 구석에 초라하게 밀려나 있었다.
절반은 도로밖 인도로 피해 있었고
절반은 도로 위에서 알 수 없는 억울함,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후자는 태반이 여자였다.
출근길 이 사태를 보고 멈춰선 시민들이 늘어났다.
그 중 하이힐을 신고 원피스를 입은 한 <언니>가
괴성과 함께 명품백을 휘두르며 전경들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들아!!
새로운 사태의 국면이었다.
뒤를 이어 몇몇 넥타이 부대가 합류했다.
남자들이 손깍지를 끼고 방패 앞에 서서 여자들을 방패로부터 막았다.
사태는 더더욱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여자들의 곡소리가 높았다.
그동안 커다란 렌즈를 장착한 대포카메라를 멘 아저씨들은
인도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성별로 지분싸움을 하자는게 아니다.
 

저 새벽이 아니라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단체와 운동권을 제외한 일반 시민을 기준으로
시위의 구심점이자 주축이자 도화선 역할을 한 건
시작부터 끝까지
여성이었다.
이 유명한 촛불소녀 이미지 또한
촛불삼국이란 일종의 연합체를 만들어 활동한
다음 여자 커뮤니티들의 합작품으로 퍼져 나갔다.
물론 남자들도 많았다. DVD 프라임, MLB 파크, 그 유명한 촛불예비군.
하지만 이들의 비율은 많지 않았고 내건 슬로건 역시 상당부분
촛불시위를 위해 뛰어나온 여고생, 여대생,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을 지키자는
요지의 즉, 여자들도 나서는데 남자가 가오가 있지 쪽팔리게. 이제 우리가 한다. 이것이었다.
폄하가 아니니 피곤하게 곡해하지 말아라.
수많은 남자들이 인터넷에서 논객 노릇 하고 있을때-트위터도 없던 시절에 자위하느라 고생했다-
시위대 과반수 이상의 "감정적인" 여자들이 조직적으로 시위현장에 뛰어들었다는 거다.
 
 
언론은 놀라 자빠질듯 떠들었다.
촛불 여고생, 대담한 발언!
먹거리 앞에 강해진 모성, 젊은 엄마들의 유모차 시위!
정치냉담의 오명을 벗고 거리로 나선 젊은 여성들!
 
비록 시위는 냉소주의자들을 염세주의자로 진화시킨채로 종식되었지만
이 시위가 가지는 의의는 대단히 컸다.
우선 여성들을 결집시키고 정치를 생활화했다.
쭉빵같은 10대 여초 커뮤에서 2-30대 여성들의 삼국 커뮤와 주부들의 마이클럽까지,
한국에서 미주까지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동가처럼 시작된 힘찬 목소리는
4대강 바자회, 신문광고, 광복절 한복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플래시몹으로
속삭이듯 노래하듯 꾸준히 이어졌다.
나보고 자뻑페미래도 상관 없는게 자화자찬할만큼 대단한 일이다.
여자들 보고 정치에 무지하다 비웃으면서도
한국 젊은 세대의 남자들 역시 생활정치의 명맥은 끊긴지 오래였으니까.
남자랑 정치토론하자고 감히 아득바득 기어오르지 않는,
백치스러운 명랑함을 여자의 한심하지만 사랑스러운 미덕으로 치고 적당히 귀여워하며
그녀들보다 신문을 더 많이 읽는다는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우리도 정치를 했다.
보고 듣고 논평한게 아니라 진짜 정치, 했다.
많이 토론하고 행동하고 모금했다.
지치지 않고 경각심을 가지며 독려도 했다.
 
그런데 반FTA시위가 거세지고 나꼼수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자
2008년을 새침하게도 지워버린 언론들은 또 다시 호들갑을 떨며 강조하더라.
이 시위는 기존 시위와 달리 정치에 냉담하던 여자들이 '처음으로' 거리로 나왔다고,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진짜 빡쳤다.
우리가 4년간 해온건 저들에게 시위도 정치도 아니었던거다.
우리는 단지 <미혼으로서 남성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시위의 꽃
(발췌:진보남성들의 성폭력, 글쓴이 선)
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해온 모든게 애교로 보였나?
위대하고 숭고하고 거창한 정치적대업은 모두 언제나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남자님들 영역이고,
여자들이 발버둥치며 주도해온것들은 새로운 취미이자 조금 색다른 소꿉놀이고 
언제까지나 그저 신기한 현상이기만한가?
니들은 우리가 나꼼수 모금함에 저금통을 넣었던 어린아이처럼 그런 맘으로 <기특하냐>?
 
   

2008년 광우병 시위 초창기 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 일은 내가 몸 담고 있는 커뮤니티들에서 잊거나 잊고싶어하는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겐 다시 꺼내기 꺼려지는 불편한 치부지만 말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삼국으로 더 알려진 다음 3대 여성 커뮤니티들은 연합시위를 계획했다.
수백명의 여자들로 이루어진 긴 대열이 가두행진할 계획이었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함께 참여한 MLB파크와 촛불예비군등 남자 커뮤니티들이 엄호하는 형태가 되었다.
그 중 두 커뮤니티는 딱히 정한 드레스코드가 없이 마스크, 운동화, 모자로 중무장했지만
한 커뮤니티는 일부러 여성성을 최대한 강조한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풀메이크업, 하이힐을 장착했었다.
<우리같은 천상 여자들도 이 꼬라지를 볼 수 없어 뛰어든다>는 의미의
가장 여성스럽고 그래서 가장 우아하게 과격한, 엿먹어라 메시지였다.
남자들도 환호하고 여자들도 열광했다.
킬힐을 신고 보무당당하게 대열을 지휘하는 그녀들에게
멋진 언니 연호가 울려퍼졌다.
초기 순수했던 의도는 씁쓸한 결말을 맡게된다.
일명 지휘부 파벌이란게 생기게 되고, 몇명의 여성들은
무채색의 시위대 사이에 원피스 차림으로 쏟아지는 예비군들의 관심을 받으며
조금 다른 의미로 시위를 즐기게 되었다.
여러 행동으로 조금씩 구설수에 올랐지만
누구도 '열심히 시위하는 진보여성'인 그들에게 대놓고 뭐라 말하지 못하던 어느날
일명 프리허그 사건이 일어났다.
시위라기보다 예비군들과의 단체미팅 분위기를 띄다가 그것이 과열된 어느날 밤
흥취한 그들에게 똑같이 흥취한 그분이 던진 말씀.
"너무 수고하셔서 제가 해드릴건 없고, 줄 서시면 한분씩 안아드릴게요."
남자들은 환호하며 줄을 섰고 원피스 차림의 여성은 차례대로 포옹을 서비스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보던 남자들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던진 "저건 뭐, 출장 도우미냐?"
한마디는 이 사태에 대한 목격담, 남자들의 뒷말, 그건 좀 아닌것 같다는 중년 시위대분들의 염려에 뒤이어
그 원피스 파벌부대가 속한 커뮤니티를 비롯
모든 여자들의 수치심에 불을 붙였다.
그 외에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있어 결국 그 여자분은 시위대에서 물러났지만
쟁점에 불을 붙인 계기는 '안아드릴게요' 사건이었다.
여자들이 그토록 분노한건 그녀들이 시위에서 남성에 대한 상납의 형태로 여성성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꼼수 듣고 도취되서 거리로 쏟아져나온거 아니다.
그 부분 우리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4년간 해온,
니들식 정서에 의하면 '아가씨들이 진보영웅남성수령분들께 상납해바친 뒷바라질' 억울해서라도
 확실히 하자.
다시 말하지만 시위 열심히 했다.
모금하고 뼈빠지게 광고도 냈다.
다들 통장에 몇백원밖에 없는 통장도 털어서 적어서 죄송해요 메세지 적어 보냈다.
정치후원금 보태고 우리가 개념정치인이라 부르는 그 분들 개별강연 주최 위해 발로 뛰었다.
바자회에 물건 내놓고 팔고 사고 그 돈으로 정치하자며 봉은사 앞마당, 땡볕과 폭우 속에서 싸웠다. 
한겨례와 경향에, 파업중이던 MBC에 힘내라고 간식 폭탄 퍼부었다.
시위현장에서 물대포 맞아가며 우비 나르고 핫팩 쥐어주고 김밥 먹였다.
그 짓 4년간 했다.
우리도 대단해요 칭찬해요 뿌잉 하는거 아니니까 그건 좋은 일이지만, 이라고 시작되는 사설 달거면
닥치거나 차라리 난 그 김밥 먹은 적 없다고 깐죽거리는게 낫겠다.
요점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너희들이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정치담론하는 것에 낚여
앞뒤 없이 뛰어들어 이 판 아이돌화시킨 빠순이가 아니고,
그게 우리에겐 정치였다. 4년 내내.
주진우에 환장하고 김총수 섹시하다 빠순질한게 아니라
이해찬을 쿨붱으로, 문재인을 워너비시아버님으로, 한명숙을 우리횐님으로,
그게 우리 방식의 여성적인 정치다.
가슴에 립스틱으로 메세지 쓰고 그라비아 아이돌 각도로 사진 찍는게 아니라
시위대를 위한 먹을거리, 입을거리 준비하고
댓글북 만들고 떡이라도 조공하고 초청강연 듣고
드레스코드를 맞춘 플래시몹을 하고
광고시안을 만들어 투표하고 
시위를 생활로, 퍼레이드처럼 즐기는게
여'성'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우리 시위방식이었지
속옷 입고 젖가슴 위에 립스틱으로 애교스러운 글을 써서
'여성, 새로운 표현의 자유'소리 듣고 싶은 생각 따위 전혀 없다.
진보의 꽃이 되어 재잘거리며 신선한 활력소가 되어주는 여동생 역할은
공짜 나레이터 모델같은 저 짓보다 더더욱 싫다.
 
 
그런데 어째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된것 같다.
경기는 듬직한 남자님들께 맡기고,
폴짝폴짝 현란한 수술을 흔들며 우리 진보 파이팅 외치는게
그래서 젊은 여자도 진보라고,
젊은 여자들도 진보논객 좋아한다고,
젊은 여자들도 정치개념남에 뻑간다고
그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 대본이었나보다.
치어리더의 선을 벗어나 이의를 제기하니
삽시간에 '우리'진보를 빠르게도 여자와 남자로 갈라
탁상공론하던 남자들은 사려깊고 수용의 폭이 넓은 논객이 되고
여자들은 까칠하고 피곤한데 벗지도 않으면서 드센 애가 된다.
남자들은 손쉽게 이것을 가슴 큰 여자vs벗지 못한 여자들의 열폭으로 격하해
머리채 쥐어뜯는 싸움 보듯 즐기며 관망한다.
심지어 남성의 주목과 관심을 사이에 둔 처첩싸움 다루듯 한다.
어쩜 그렇게 심플하고 쉬울 수 있는지
과연 트위터 말꼬투리 하나엔 죽자고 달려들어 지기싫어 짖어대도
사사로운 여자들 개싸움에는 감히 끼어들지 않는 관용적인 진보남성의 배포와 여유답다.
표현의 자유 좋아하네.
루저 사태때 그놈의 방만한 표현 덕분에 상처 입었다고 들고 일어나 이를 갈던 남성들은 어디로 갔나.
이슈화 앞에 여성성은 '가슴칠판'의 쇼맨쉽 도구로 전락돼도 괜찮냐?
 
  
한마디만 보태자면 슬럿워크랑 모피반대시위를 예로 든 인간아.
모든 표현의 자유에는 명제가 있다.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에도 근거가 있단 소리다.
슬럿 워크는 일명 잡년시위로 애초에
'성폭행은 매춘부처럼 입은 여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라는
경찰의 개소리에 캐나다와 북미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진,
'우린 야하게 옷을 입을 권리가 있고 그것이 니가 날 만질 권리를 허락하는건 아니에요'
라는 슬로건을 건 시위다. 그렇기때문에 매춘부처럼 입은거다.
반모피 누드시위는 모피를 입느니 벗으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시작된 과격시위다.
둘 다 야하거나 누드여야할 필요와 이유가 있었다.
정봉주 석방을 위해 제공된 여자 가슴은 도대체 어떤 연계성이 있는가,
이 가슴사건에 '이슈가 된 쇼맨쉽' 이상의 정당성이 있는가?
한 남성이 티팬티를 입고 양쪽 엉덩이에 동성애자에게 인권을 주세요라는 글자를 립스틱으로 쓴채
야동각도로 엉덩이 클로즈업한 사진을 올렸다면
그것은 처참한 성적소수자인권을 대변하는 인권운동가의 재치있는 퍼포먼스가 되었을까?
 
이 사건의 주체가 젊고 풍만한 여성이고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가 50대 남성정치인의 석방이며
그것을 위해 이용한것이 여성 특유의 신체부위였기에
엮인 사람들의 인성이나 지위 업적을 떠나 구도 자체로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불쾌한 무언가를 연상하게 된다.
그에 대한 남자들의, 그 말도 웃긴 '진보적인 남성들의'
느물거리는 시선은 그냥 한마디로 똥벼락이다.
 
 
총수는 녹음실에 앉아,
킬킬대며 또다시 정치적 담론을 나눌때 뭐라 하려나.
한마디라도 하려나.
유난이야 씨바라 하려나.
고재열은 이 일에 눈을 빛내며 냉소하려나.
여'성'간의 젖은 티셔츠 싸움 보듯 관람하며 한국 여자의 피곤한 강박적 열폭에 대해 트윗을 쓰려나.
주진우 기자는 진심으로 당혹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여자들이 '삐졌는지' 몰라서.
진보논객들은 어이없고 짜증나고 기집애들이 재수없을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스압으로 징징대는거냐고 어른의 한마디를 날릴지도 모르지.  
이번 사태로 제일 짜증났던건 가슴사진도 표현의 자유드립도 아니고
처음부터 대등한 수평선에 놓아준적도 없던, 여전히 정치적 부외자인 20대 여자애들을 향한
재롱 가득한 퍼포먼스 보듯 하대 섞인 우쭈쭈란것도 모를것이다.
 
 
여자들이 이 사태에 대해 가지는 감정을 정리하자면,
고재열로 비유 또는 대변되는 캡쳐의 트위터리안들에겐 환멸이고
주진우기자에겐 경멸이다.
왜인지는 죽어도 모를것이다.
정확히는 아마 이 글을 끝까지 제대로 읽을 자가 없다는게 맞는 말이다.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2. 26. 17:12

인증샷을 구해왔다.
슬프게도 두 신문을 구독하는 집도 아닐 뿐더러
오며가며 일간지를 구입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도화선이 되어 민주주의에 대한 현 상황을 비판하는 광고로써
비단 정봉주 의원 개인에 국한되는 내용이 아닌 현재의 어지러운 시국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뻗어나가있다.

재학생, 졸업생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두 신문사에 모두 광고를 낼 정도의 돈을 모았다는 점도
이화인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후퇴한 민주주의를 되돌리기 위해, 학생들부터 '행동하겠'다는 이번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추가: 최종 모금 시간까지 1000명이 넘는 재학생, 졸업생들이 모금을 하였다고 한다.

        865라는 숫자는 시안을 넘길 때의 사람 수였다고.



경향신문 20면에 나온 전면광고


한겨레신문 1면 하단에 나온 광고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2. 22. 14:08


미디어몽구 제공

사법부 사망. 안녕.
정봉주 의원 오늘 오전까지 출석통지를 받았으나 다음주 월요일에 출두한다고 합니다.
(출처-주진우 기자 트윗 외 / 수정 2011.12.23)
크리스마스는 좀 지나고 넣어라 **야, 진짜 욕 나오는데 블로그 더럽힐 수도 없고 진짜.

진정한 삼권분립은 애초에 없었다.... 최재천 의원의 말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선거 똑바로 해서 사면해드리는 방법 밖에는 없겠네요.

그간 정치 더럽다고 멀리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대신 들어가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 땅의 진정한 보수가 되겠습니다. 전 진보는 아니거든요.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2. 21. 13:22
내 말 한마디에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정성껏 들어주면 돌부처도 돌아보신다
말에는 자기 최면 효과가 있다

상대편은 내가 아니므로 나처럼 되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이 말을 듣는다고 미리 생각해보고 말해라
정성껏 들으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지루함을 참고 들어주면 감동을 얻는다
한쪽 말만 듣고 말을 옮기면 바보 되기 쉽다
자존심을 내세워 말하면 자존심을 상하게 된다

남의 명예를 깎아 내리면 내 명예는 땅으로 곤두박질 쳐진다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면 진실성을 인정받는다
말의 내용과 행동을 통일시켜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인정받는다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는다
말은 입을 떠나면 책임이라는 추가 달린다

대화의 질서는 새치기때문에 깨진다
침묵이 대화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한다
첫 한마디에 정성이 실려야한다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면 대화는 저절로 잘된다
내 마음이 고약하면 남의 말이 고약하게 들린다
지적은 간단하게 칭찬은 길게 해라

말투는 내용을 담은 그릇이다
따져서 이길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된다

좋은 말만 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유머에 목숨걸지 말라
반드시 답변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화를 자초한다

설명이 부족한 것 같을 때쯤 해서 말을 멈춰라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라
농담이라고 해서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표정의 파워를 놓치지 말라
적당할 때 말을 끊으면 다 잃지는 않는다
사소한 변화에 찬사를 보내면 큰 것을 얻는다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해라
입(말) 서비스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당당하게 말해야 믿는다

흥분한 목소리 보다 낮은 목소리가 위력있다
눈으로 말하면 사랑을 얻는다
덕담은 많이 할수록 좋다

공치사하면 누구나 역겨워한다
잘난척하면 적만 많이 생긴다
두고두고 괘씸한 느낌이 드는 말은 위험하다

상대에 따라 다른 언어를 구사해라
과거를 묻지 말라
일과 사람을 분리해라

애교는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화의 시작은 호칭부터다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진다

작은 실수는 덮어 주고 큰 실수는 단호하게 꾸짖어라
지나친 아첨은 누구에게나 역겨움을 준다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한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다

악수는 또 하나의 언어다
쓴 소리는 단맛으로 포장해라
낯선 사람도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십년지기가 된다

타협이란 완승, 완패가 아니라 둘다 승이다
험담에는 발이 달렸다
단어 하나 차이가 남극과 북극 차이가 된다

진짜 비밀을 차라리 개에게 털어놓아라
가르치려고 하면 피하려고 한다
비난하기 전에 원인부터 알아내라

눈치가 빨라야 대화가 쉽다
불평하는 것보다 부탁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말도 연습을 해야 나온다

허세에는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
내가 먼저 털어놓아야 남도 털어놓는다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어서는 안된다

지나친 겸손과 사양은 부담만 준다
말은 가슴에 대고 해라
넘겨짚으면 듣는 사람 마음의 빗장이 잠긴다

때로는 알면서도 속아 주어라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1. 22. 23:27

勞動 없는

노동 없는 부

 
良心 없는 快樂

양심 없는 쾌락


人格
없는 敎育

인격 없는 교육


道德
없는 商業

도덕 없는 경제


人間性
없는 科學

인간성 없는 과학


犧牲
없는 宗敎

희생 없는 신앙



마하트마 간디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0. 30. 21:35
Q 수능 실패에 대한 가족들의 실망에 참담합니다

1년 재수해 올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중·고등 시절엔 항상 칭찬만 들었습니다. 공부 잘한다, 모범생이구나. 저는 그 소리에 항상 우쭐했고 얼떨결에 특목고로 진학해 가족들 기대는 더 커졌습니다. 거기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완벽한 모범생이었죠. 가끔 내가 뭘 위해서 이러는가 생각도 들었지만 내 꿈을 위해서라고 되뇌었습니다. 큰 기대 속에 첫 번째 수능 치렀고 실패해 실망하는 소리를 약간 듣긴 했지만 다시 큰 기대 속에 재수 시작, 다시 실패. 지금은 가족들이 생각했던 명문대와는 거리가 먼 대학에 입학해 다니고 있습니다. 삼수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는 그런 고생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래서 이 학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복수전공도 하면 된다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친척, 선생님, 주변 사람들의 실망에 힘이 듭니다. 칭찬만 듣다가 대학 와서 처음 실망하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이젠 두렵기까지 합니다. 가족들이 누구는 거기에서 잘 다니고 있다더라, 하는 말에도 위축이 됩니다. 내가 계속 하찮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계속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고 마음에 들게, 칭찬받을 수 있게 행동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1. 엉아 맴이 아프다. 웬만해선 남의 일로 마음 안 아파 주시는 성정인데 말이다. 
왜냐. 당신은 영문도 모르고 징집되어 진군가에 홀린 채 목적도 모르며 싸우다 어느 날 낙오해 버린, 
인생 학도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우리나라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2. 라깡이란 자가 있었다. 정신분석에 기호학적 접근 시도해 업계에선 지들끼리 쳐주는, 시쳇말로 ‘좀 짱인 듯’한 프랑스 작자다. 이 양반이 그런 소릴 했다.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여간 업자들 말로 가오 잡는 건 알아줘야 한다. 뭔 소리냐. 복잡한 거 다 빼고 말하자면, 아이는 엄마 만족시키려고, 엄마가 원한다 여기는 걸 자신도 원하게 된다는 거다. 

이게 골 때리는 게, 내가 뭔가를 원하는 게 엄마가 원하니까 원하는 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냥 원하는 건지, 그 구분이 안 가는 거라. 어쨌든 어떤 아이나 거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걸 일반화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했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들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열받은 건, 그 식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이 남성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인 거라. 여성들이 남성 욕망에 자길 맞춘다는 거지.

여하간, 골자는 이렇다. 당신은 여태 부모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의 욕망을 위해 당신 인생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게 다 자신의 욕망인 줄 알고. 말하자면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 아이였던 거지. 특히 우리나라는, 10대에게 요구하는 게 오로지 학교 성적밖에 없는 야만적인 사회인지라 신처럼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그 마인드 세트를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당신이 가끔 내가 뭘 위해 이러나 싶다가도 그 궤도를 한 치도 못 벗어난 건 그래서다. 공부만으로 만사형통이었거든. 그런데 그 영광의 노정을 질주하던 당신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삐끗했다. 

우리나라에선 그 노선, 하나밖에 없는데. 어릴 땐 공부고 커서는 돈이고. 거기서 탈락한 당신에게 일순, 환호는 멈추고 박수는 거둬진다. 버려진 거다. 지금껏 다른 이들의 욕망을 좇아 단일노선만 달렸던 당신, 공부 이외의 방법으론, 스스로를 존재 증명하는 법도 모른다. 공포가 엄습할 밖에. 날 입증할 방도가 사라졌으니. 안절부절. 이젠 칭찬을 구걸이라도 해야 한다. 비굴해지거나 혹은 친절해져서라도. 그렇게라도 누군가의 승인을 따내야 한다. 존재가치를 그나마 느끼려면. 지금 당신 상태다.


3. 내 생각은 그렇다. 지금의 당신에겐 봉창 타격음이겠지만, 참 다행이다. 지금쯤 실패해서. 회복할 시간이 많아서. 아마 당분간 참담할 게다. 과거 영광과 낮아진 자존감 사이서 방황도 할 게고. 그러나 그런 비용을 치르고라도 부모 욕망으로부터, 다른 이들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기회를 얻은 건, 당신 인생 전체로 보자면, 크게 남는 장사다.
 

물론 부모 욕망에 응답코자 하는 건 모든 아이의 숙명이다. 그리고 거기 부응치 못한 자책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자도 없고. 거기까진 정상이다. 사실 인간은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의 욕망에 호응하느라 부산하다. 삶 자체가 인정 투쟁이라고. 하지만 모든 건 결국 밸런스의 문제다. 
  


우리나라엔 남의 욕망에 복무하는 데 삶 전체를 다 쓰고 마는 사람들, 자기 공간은 텅텅 빈 사람들, 너무나 많다. 당신만의 노선을 찾고 그리고 거기서 자존감, 되찾으시라.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쉽지도 않다. 하지만 그 길은 당신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결코 친절해지진 말라는 거. 
오히려 이제부턴 차근차근, 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거. 
남의 기대를 저버린다고 당신, 하찮은 사람 되는 거 아니다. 반대다. 
그렇게 제 욕망의 주인이 되시라. 

어느 날, 삶의 자유가, 당신 것이 될지니.





덧붙임-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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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ESC  김어준의 그까이꺼아나토미  
http://★www.hani.co.kr/arti/SERIES/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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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류/글2011. 10. 16. 15:21
우리집은 가난해
자식들 모두에게 균등하게 투자하면 이도저도 아니라고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한대.
다같이 못사는것보다 낫대.
난 공부하고 싶다고 반항했지만 아빠가 강제로 머리깎여 공장으로 보냈어.
나와 동생은 공장에서 일하고 오빠는 고액과외를 받아서 서울대 법대를 갔어.
하지만 서울대 법대에서도 사시준비를 해야해서 우리는 여전히 그 돈을 벌어야했지.
오빠는 결국 사시패스를 했어.
이제 나는 대학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오빠랑 아빠는 조금만 더 희생하래.
오빠가 검찰총장이 되려면 좋은 집안의 여자도 만나야하고, 내 대학등록금 대주면 품위유지하기 곤란하대.
우리집은 검사오빠지만 나는 여전히 시궁창이야.
이제 오빠덕(?)에 공장에서 일하지 않고 작은 사무실에서 경리를 보지만 나도 오빠만큼 뒷바라지 받았더라면 여기있지 않았을텐데.
아니, 균등하게 교육시켰더라도 조금은 나아졌을텐데.
아빠는 말해. 그래도 우리집은 검사를 배출한 집안이 아니냐고.. 이만하면 성공한게 아니냐고.



     - 내가 생각하는 박정희 정권과 경제, 그리고 국민.


아빠=정부 오빠=대기업 나,동생=서민

왜 순화냐고? 적어도 죽은 사람 얘기는 안 썼잖아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10. 10. 11:44
자존감이 높은 사람



- 자기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 공감능력이 높다.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을 EQ라고 하는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EQ도 높다



- 리더가 된다. 리더는 사람들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잠재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돕는다. 갈등을 풀고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 낸다

인정이 많고 자신감이 있으며 미래에 대해서 희망적이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도 많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다. 사람들은 안심하고 그를 따르며 성공 경험도 많이 한다. 그래서 그는 리더가 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 자기의 눈, 코, 체중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자기 외모에 열등감을 심하게 느낀다



- EQ가 낮다. '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에 신경 쓰느라고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을 자기 식대로, 부정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나에게 화가 난 거야. 나를 싫어하고 있어' 

좋은 대인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힘들다. 



자존감과 열등감 

자존감과 열등감은 자신을 보는 관점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조건이 아니라 관점이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바꾸지 않고서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다. 사람들은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을 평가한다



첫째는 자기 가치감이다. 

이는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 나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라고 평가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마음이 즐겁고 편하다

상대방의 좋은 반응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스스로 자기는 무가치한 사람이고 싫증나고 지루한 사람, 의존적인 사람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도 많다. 그러나 겉으로 이런 내색을 못한다. 세상을 혼자 살 수는 없고 피치 못할 대인 관계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득이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구실을 만들어 피하기도 하고, 정 피할 수 없을 때는 따로 화제를 준비하기도 하며,

단둘이 만날 자리를 세 사람 이상이 만나는 자리로 만들어서 불편한 대인 관계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물건을 살 때도 점원의 눈치를 보느라고 물건 값을 제대로 깎지 못한다

택시를 탔을 때도 기사의 눈치를 본다

불필요한 칭찬도 한다. '운전 참 잘하시네요' 아부 수준이다

거스름돈이 동전일 때는 기사에게 달란 말도 못한다. 그래 놓고는 '내가 왜 그 돈을 포기했지?'라는 생각에 두고 두고 화가 난다

세상 살기가 참 힘든 사람이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 기사님,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동전을 안 주셨네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당당하고 자신을 남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본다 



자존감의 두 번째 요소는 자신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감이 있어야 사업도 시작할 수 있다. 

자신감이 있어야 프러포즈도 할 수 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희망적이다.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합격의 희망을 가지고 공부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감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증에 잘 빠진다

자신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노력해봤자 별 수 없다'는 상태가 무기력의 상태다

무기력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특히 우울증 환자들의 특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나는 안 돼요. 시도해 봤는 걸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무능해요. 그리고 세상이 너무 험해요 무서워요'

용기도 나지 않고 아무 의욕도 없다

사회적 접촉을 피하고 친구들도 피한다

시험공부를 할 때도 '공부해 봤자 떨어질거야' 라는 자기 예언을 가지고 공부한다

이런 마음으로 공부할 때 공부가 잘될 리가 없다



심리적인 생기를 상실한 사람이다. 무기력은 하나의 타성이 되어 버린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아, 안 되는구나. 역시 난 안 돼'라고 쉽게 포기해 버린다

'나는 할 수 없어. 전에도 그랬어' 라는 무기력증의 타성에 자주 빠진다

자존감이 지나치게 낮을 때 열등감이 생긴다 



낮은 자존감의 문제 


* 환자들은 지나치게 자기 비하적이다. 이런 자기평가 방식을 깨닫고 바꾸는 것이 치료의 중요한 과제이다

환자들은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을 해 놓고도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자신을 깎아내린다



어려운 취직 시험에 합격한 청년이 뜻밖에도 '재수가 좋아서 붙은 거에요. 친구는 더 좋은 자리에 들어갔는 걸요' 라고 한다든지,

3개월만에 체중을 5킬로그램이나 빼고 날씬해진 여성이 기뻐하기는 커녕 '아직 멀었어요. 금방 또 뚱뚱해질 건데요. 뭘...' 하고 

비관적인 말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부정적 사고방식 자체를 이해하고 고칠 필요가 있다.

한 부인은 누군가 '옷이 참 예쁘네요' 라고 칭찬하면 당황하여 '아니에요. 길거리에서 산 싸구려 옷이에요. 벌써 산 지 2년이 넘은 건데요'

라고 옷을 비하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정신 치료를 받은 후 그녀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했다. 누군가 자기를 칭찬하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쁘네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상대도 좋아하고 자신의 기분도 좋아졌다고 했다. 

상대방의 칭찬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진 증거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정신도 건강해진다



가혹한 초자아(너무 높은 도덕 기준을 강요하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심한 죄책감을 느끼게 함)



* 이런 초자아를 가진 사람은 항상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어.' 라고 평가하거나 혹은

'나는 죄인이야. 나는 벌 받을거야.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라고 자기를 책망한다. 

이런 성격은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인생을 즐길 줄도 모른다. '나는 즐길 자격도 없는 놈이야' 라고 초자아가 가로막기 때문이다

아내와 성생활도 못하고 지나친 금욕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죄책감이 심하기 때문에 처벌 불안이 높다



* 평소에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쉽게 받는 사람들이 여기에 잘 빠진다.

남의 비난을 듣지 않으려고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들이다. 예의바르고 약속 잘 지키고 희생적이고 빈틈없는 사람들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인데도 막상 자신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성격적인 문제를 가진 이들이다



* 자학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지나치게 희생적인 생활을 한다

가족은 끼니를 굶고 있는데 월급을 고아원에 기부하는 사람들이다. 



*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유년기의 부모와 자신의 관계를 돌아봐야 한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초자아는 유년기에 형성된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데, 부모의 태도가 아이의 내면에 내재화되면 초자아가 된다

초자아는 아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부모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엄한 부모, 너무 처벌적인 부모가 가혹한 초자아를 만든다

아이다운 잘못에 대해서 지나친 벌을 주는 부모의 자식들이 가혹한 초자아를 갖는다

아이가 도달할 수 없는 너무 높은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의 초자아를 만든다



말과 행동이 다른 부모도 아이를 혼란스럽게 한다

예를 들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엄마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아이가 친구 집에서 친구 엄마의 진주 목걸이를 훔쳐 왔다

'엄마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이때 엄마가 ' 우리 아들이 효자네'하고 감동한다면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일관되고 합리적인 초자아를 기대할 수 없다

부모가 너무 나약하고 부드러워도 초자아는 비정상적이 된다


학벌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



관점을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법이다.

예컨대 '학벌 한 가지로 나를 평가하지 말자. 나는 건강하고 애들도 잘 키웠고, 나를 사랑해 주는 성실한 남편도 있다.

이만하면 먹고 살 만큼 가계도 잘 꾸렸다. 우리 가정은 내 자랑이다. 나를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라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고졸의 학력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괴로워했던 E부인(미움받고 자란 셋째 딸:학벌열등감)의 경우처럼 관점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일기를 써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신의 관점을 어른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행동을 수정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이런 시도를  해본 사람들의 80% 이상이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일기쓰기는 다른 열등감의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

   

먼저 그날 하루 열등감을 느낀 사건을 적는다.

다음에는 그때 떠오른 생각과 느낀 감정을 자세히 적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생각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적고, 수정된 합리적 행동을 적는다.

예컨대 E부인이 과일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에 쓴다면 이렇게 쓰는 것이다.



1) 사건 : 오늘 과일 가게에 갔다.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젊은 점원이 큰 소리로 나를 책망했다.



2) 감정과 떠오른 생각 : 몹시 불쾌했다. 그리고 점원이 내가 고졸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대졸로 보였다면 젊은 사람이 감히 손님에게 저렇게 불손할 수 없을 거다.' 라는 생각을 했다.



3) 합리적 비판과 수정 행동 : 그러나 점원이 내 학벌을 알 리가 없다. 내 생각일 뿐이다. 나의 오해다. 

                                        점원에게 "손님에게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아요. 

                                        나는 과일 안 주물렀는데 그런 손님들이 많은가 봐요?"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다음에는 그렇게 말해 주어야지.



이것을 '인지 행동 치료'라고 한다. 매일 꾸준히 반복하면 열등감에 의해 왜곡된 사고가 합리적으로 변한다.

극복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치유가 일어나게 돼 있다.




자존감= 성공/욕심

  

*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성공의 기록을 많이 올리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혹은 자기에게 거는 기대수준인 욕심을 낮출 때도 자존감은 높아진다



현실적인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의 차이가 클수록 열등감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거는 환상적인 기대나 이상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이상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욕심을 줄이면 자존감이 올라간다. 욕심이 많을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 사실 모순되는 것같이 보이지만 열등감의 심리에는 욕심이 숨어 있다. 남을 밟고 우위에 서려는 욕심이다.  돈 많은 부자로서 돈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출세해서 남을 힘으로 지배하고 싶은 욕구가 열등감의 뒤에 은밀히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욕심을 채워 주지 못하는 자신의 외모, 능력. 재산이나 집안이 부끄럽고 싫은 것이다. 이런 욕심을 버리면 열등감 극복이 쉬워진다



*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성공과 성취 점수를 높이는 것이 좋다.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자존감은 올라간다

반대로 성공 경험이 낮고 실패가 많을수록 자존감은 공격받는다



*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은 '나는 완벽해야 해. 내가 완벽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해.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약점을 알아서는 안 돼. 나의 약점이 노출되면 참을 수 없는 수치를 당할 거야' 라고 믿고 있다. 완벽주의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없다



*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압력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자존감이 올라간다

자존감은 완벽해진 다음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자신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 줘야 한다

돌이켜 보면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는 얼마나 지독한 순간들을 겪어 내었던가? 남들은 우리가 겪은 그 고통을 알 수 없다

참아낸 자신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비난만 하지 말고 수고를 인정해 주자. 이때 자존감이 살아난다 



* 성폭행이나 왕따를 당한 후에 열등감에 빠지는 사람들은 '내가 못나서 그런 일을 당한거야'라며 자기를 비난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나 남에게 비난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비난에서 벗어나 마치 곤경에 빠진 다른 사람을 위로하듯 자신을 위로해 보자

자기 위로가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


이무석 - 자존감 중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8. 20. 11:35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으로 남긴 업적:

성수대교 붕괴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 제작당시 특수교량을 일반교량건설과 같이 실적위주로 2년 6개월간의 무리한 준공기간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부실화됨

연천댐 붕괴 (이명박이 각서까지 쓰고 한 공사): 86년 11월 준공, 96년 1차 붕괴된 후 2000년 완전 철거된 연천댐은 홍수 및 침수피해 우려를 무시하고 '댐 설치 후 만수위 이상으로 홍수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이를 보상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제출하고 강행된 공사였는데 결국 우려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이 연천댐 시공사는 현대건설, 각서를 써준 이는 당시 현대건설 사장 이명박

올림픽공원 다리 붕괴 (현대건설 시공): 이명박은 현대건설 재직당시 1980년 9월 이란-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막대한 공사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고, 또한 1990~1991년 이라크-쿠웨이트 전쟁으로 인하여 미수채권의 회수가 어려워져 이탓에 퇴임 9년 뒤인 2001년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원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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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자서전에 나오는 이명박의 실체
 

이명박의 조작된 영웅신화 그 진실

소설과 방송이 조작한 영웅신화, 진실을 감춘 이명박의 행태

사람들은 이명박 하면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떠올린다. 그의 실화인 것처럼 등장한 TV소설 드라마 <야망의 세월>은 이명박씨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고, 그가 정계 진출과 유력 대통령 후보까지 되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당시 그 드라마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명박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고 정주영 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건 모두가 작가의 장난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드라마에 보면 이명박씨가 소양강 댐이다 뭐다 해서 이명박씨가 다 한 것처럼 나오고, 박대통령앞에 가서 으르렁댄 것처럼 나오는데 사실이 아니다. 소양강 댐 만들 때 이명박씨는 간부도 아니었고 참여도 하지 않았다." 

"현대건설이 65년에 태국 에서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칼을 든 폭도들이 난입해서 금고를 열라고 요구했으나, 이명박씨 혼자 끝까지 목숨 걸고 금고를 지킨 무용담도 나오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이명박씨는 사실 금고를 지킨 많은 사람 중의 한명일 뿐이었다." 

"현대건설이 생긴 지 40년이 넘는데 현대건설 초반기 공사에 이명박이 주역을 담당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명박이 사장 이상의 위치에 있었던 것은 한 10년쯤이나 될까말까이다." 

"드라마 상으로는 조선소 건설이나 자동차 등등 다 그 이명박이 한 것처럼 나오고, 그 때 서류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다 한 걸로 나오고, 중동건설도 참가할 자격도 못 되었던 이명박이 다 한 것처럼 나오니, 사내에 보이지 않는 위화감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회사 내에서 분위기가 아주 어색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해서 이명박이 떠날 분위기를 자초한 게 되었다" 등등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마는 허구의 사실을 실화인 것처럼 완전 조작한 가공의 영웅을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공된 소설의 영웅신화 이미지를 톡톡히 보며 정계진출과 출세가도를 달려온 이명박씨가, 자신의 책에서건 어디에서건, "그 프로는 사실이 아닌 허구다." 라고 솔직히 밝혔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더 미화시키고 영웅화 시키는 실상과 거짓 자서전의 내용들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그 허구의 드라마가 만든 "환상적 영웅신화"의 이미지가 대통령이 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 영웅신화 프로에 보면, 고위층 인사가 이명박(유인촌)에게 협박을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을것 같나?" 거기에서 이명박(유인촌)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을 지금 보고 계십니다. 한번 털어 보시지요" 하면서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있고 의연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참으로 멋지고 가슴이 후련하게 뚫리는, 영웅적인 언행이다. 

그런데...그게 현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에서 빠져나온 현실은 그런 떳떳한 모습이거나, 적어도 보통 사람 정도의 도덕성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죄상들 만으로도 현역 최악의 온갖 부패타락 경력과 혐의들로 뒤엉켜 있으며, 또한 그의 뻔뻔한 대국민 거짓말들도 계속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만약 소설이 아닌 실화에서 실제 발생한 사건들을 있는 대로 보여준다면 어찌 될까? 즉, 이명박씨가 자신의 범법행위를 감추기 위해, 증인 매수 도피에, 위증교사에, 허위자백서에, 거짓말 기자회견을 했다가 들통나고, 자기의 죄를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을 만들어준 당의 선거자금 폭로 위협을 하며 물귀신작전으로 버티고, 편법으로 1만원대의 의료보험료를 내고, 현대건설을 부실화 시키고, 부동산 투기에, 공직까지 이용하여 자기와 자기 배를 채우고, 부동산 투기와 명의신탁을 계속 잡아떼다가 들통나고, 

자기 회사 차렸다가 사기당해 말아먹고(주가조작 사기의 공범이라는 혐의가 있으나 아니라 치고),TV토론에서마저 국민에게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고, 서울시장 재직시 부채 줄였다고 거짓말했다가 들통나고, 30년 은인 정주영을 배신하여 가슴에 못을 박고, 툭하면 실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위장전입 부인하다가 들통나고, 경제대통령을 논하면서 서울시 경제실적을 전국 꼴찌로 만들고, 교통사고 운전자를 바꿔쳤다 들통나는 등의 현실적 모습을 보여준다면...아마 소설로써의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 하는것일까? 

물론 가공된 소설 속의 영웅신화라 할지라도, 그러한 영웅적인 모습들이, 오늘 같은 영웅 부재의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무언가 모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소설이 실존 인물의 본모습을 왜곡시켜, 국민의 착각을 유발시키고, 그러한 "조작된 영웅이미지"를 바탕으로 지도자로까지 선정된다면 이는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가상현실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권이 장악한 공중파의 현실을 고려할 때,TV 소설의 가공된 영웅이미지는 결국 공중파를 통해 진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진실이 밝혀지는 시기는 한나라당 경선이 끝난 후의 본선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가서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이 나라의 미래가 나락으로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가 중대사가 걸린 상황에서, 그 가공된 영웅신화의 소설과 현실은 미리 구분 되어 알려져야 하고, 이명박씨에게 책임의식이 있다면, 조작된 진실은 당사자인 이명박씨 스스로가 솔직히 밝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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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망언 모음

1. (현 대통령을 평가절하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며) 요즘 대통령은 개나 소나 하나? 

2. 김구는 실패한 사람이다 

3. 일본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 

4. 동남아시아 국가처럼 만들겠다 

5. 서울 시민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 

6. 군대를 동원해서 수도 이전을 막겠다 

7. 나를 찍지 않을 사람은 투표하러 안 나와도 괜찮지만, 나 찍을 사람들은 다 나와야 한다 

8. 요새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1970~80년대 빈둥거리던 사람들인데 자격이 없다(전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쩌죠) 

9. 1시간도 공부 안해 본 사람들이 대운하 반대한다 

10.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은 지 10년은 됐는데 아직도 건재한 거 보면 하나님의 가호다 

11.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와 국사 등을 영어로 강의하면 ‘어학연수’를 가도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12.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 로 지칭. 부마항쟁을 부마 ‘사태’로 지칭 

13.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돈 있는 사람만 정치해야 한다 

14. (현대 건설 다닐 때 외국에서 근무한 이야기를 하면서) 외국에서 마사지걸이 있는 곳을 갈 경우, 얼굴이 예쁜 여자보다 별로인 여자를 골라라. 아는 선배는 예쁜 여자는 남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았다 생각하여 별로인 여자를 고른다. 서비스도 좋더라 

15. (1인 시위하는 여성 복지사를 조롱하며) 이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운영비에 지원해라. 국가에서 지원해줄 필요가 없겠다. 예산 현실화 시위할 시간 있으면 겸손하게 사회복지나 해라(이명박 아내는 1000만 원짜리 핸드백 가졌다던데) 

16. 국민이 모은 돈으로 숭례문 복원하자(잘되면 자기 탓, 못되면 국민 탓) 

17. 근로자는 자원 봉사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 
Posted by Roah+
무분류/글2011. 6. 9. 00:57
많이 닮아있는 건 같으니?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 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와
어른이 되어간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워어 않도록

푸른 가슴의 그 꼬마아이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니
어른이 되어간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오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워어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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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나를 붙잡아주던 노래

이번에도 부탁해
Posted by Roah+